
국가유산청, 신라 대릉원
사람이 죽으면 묘가 된다. 과거에는 강한 힘을 가진자만이 자신의 묘를 가질 수 있었다. 아마 힘이 없는 자는 인간으로 취급을 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의 묘 안에는 살아생전 그들이 사랑했던 것으로 가득 채워지기도 했다. 때로는 거대한 지형을 이루어 이집트의 왕가의 계곡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은 표식없이 흙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간다. 21세기의 대부분의 죽음은 평등하다. 연명의 시기는 다르지만 투명한 호스에 영양소와 공기를 전달받다 점점 몸의 활동들이 멈춘다. 아마 정신도 점점 아득해 지는 것 같다. 24시간 안에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몇시간에서 몇분이되다 사라진다. 그들은 화장 당해 작은 통에 하얀가루가 되어 담기고 서랍장같은 납골당에 놓인다. 아마도 월 5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그곳에 자리한 값어치를 하게 된다. 물론 힘이 강한 사람들은 이 시대에도 비싼 값을 지불하고 조금 더 좋은 자리에 가게 된다. 영혼이 있다면 아마도 그곳은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 9호선 같은 모습일 테다. 과거에는 비를 만들어 누구의 아들이였으며 언제 태어났고 누구의 배우자였는지 같은 것들이 적어놓았지만, 요즘의 조그마한 단지 앞에는 그들의 사진이 놓여있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다. 간간히 놓여지는 생생한 꽃들이 그곳의 유일한 생명에너지다.
미래의 묘는 어떤 모습일까?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공간에 묘를 만들지 않을까? 물리적인 증표는 그것을 출력해내는 모니터가 다이지만 아주 뛰어난 해상도를 자랑해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는 메트릭스다. 언젠가 그들은 이 네트워크 속에 00의 묘 같은 페이지를 가지게 되지않을까? 그곳에는 살아생전의 당신의 사진과 영상들이 가득할테다. 그들을 기억하고 싶은 이들이 페이지를 관리하는 이들에게 5만원 같은 소정의 비용도 지불할 테지. 어쩌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영원할 것같은 네트워크 속의 정보들도 그것을 보관하는 디스크의 물리적 부식으로 인해 랜덤하게 사라진다. 그것을 막기위해 엄청난 열을 매순간 방출하는 에너지 덩어리 데이터 센터들을 대규모로 건축해가고 있지만 그 누가 알 것인가. 빈도가 떨어지는 정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결국 이 새로운 공간의 묘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어쩌면 내 아이폰의 사진 앱(App)이 바로 그것이다. 선별된 정보들은 사실 누군가의 죽은 순간들이며 모두 누군가의 묘일 뿐이다. 나의 묘(墓).

나무와 곁의 의자, 빨래줄에 걸린 이불빨래, 작은 텃밭을 일구는 할머니, 경사진 비탈을 뛰도는 아이들이 모여 특유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감각을 만들어 낸다. 2017년 부산 영주아파트 꼴라주
할머니 집 가는 길은 항상 설렜다.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된장 냄새, 달그락 거리는 식기 소리, 거실에서는 할아버지가 보는 뉴스가 나왔다. 곁에 가 앉으면 과자통에서 옛날 과자를 꺼내주며 밥은 먹었나? 물었다. 끈적한 장판에 기대어 눈을 감으면 소리와 냄새, 그 모든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두번의 이사에도 할머니 집은 늘 그 곳에 있었다, 할머니가 떠난 뒤 그 장소는 너무도 낯설어서 더 이상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냄새도 소리도 흔적만이 남았다. 오롯이 창가의 빛만이 그대로 남아 그 적막을 심화시켰다.
사람은 공간에 감정을 불어 넣어 분위기를 만든다. 물리적인 것이 사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발생되는 다양한 감각들 : 향과 소리와 감촉 이미지 그리고 그 것들이 쌓여 만드는 분위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발성 기억이 되기도 하고 켜켜이 쌓여 그 사람을 이루는 추억이 되기도한다.
사람이 사라지면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며 흘러가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대기의 흐름은 멈춘다. 그런 장소에서 특유의 생활 감각을 끌어내 새로운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자한다. 긴장과 이완은 흐름을 만들고 대지에 활력을 불러 일으킨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